
철원의 바람은 이날 유난히 더 오래 머물렀다.
6.25 전쟁 당시 벨기에 참전용사로 철원 전선에 서 있었던 고(故) 어네스틴 버니어 씨의 아들 크리스토퍼 버니어 씨가 부친의 발자취를 찾아 지난 4월 22~23일 철원을 찾았다.
전쟁이 남긴 상흔보다 평화의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지금, 그는 아버지가 지키고자 했던 땅을 직접 밟으며 오래된 기억과 마주했다.
이번 방문은 부친이 생전에 자주 이야기하던 백마고지와 잣골(현 유곡리 일원) 전투 지역을 직접 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에서 시작됐다.
크리스토퍼 씨는 철원군의 안내를 받아 DMZ 평화의 길 횡단노선을 따라 이길리 검문소, 유곡리 일원, 도창리 검문소 등을 둘러보며 아버지가 지나갔을 철원의 전장을 되짚었다.
곳곳에 남은 전적지의 흔적과 한탄강 일대의 고요한 풍경은 그에게 전쟁의 기억과 현재의 평화를 동시에 전했다.
특히 백마고지 전적비와 잣골 방어전이 벌어졌던 지역을 마주한 그는 오랜 시간 가슴에 담아두었던 부친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깊은 감회에 젖었다.
“아버지가 지켜낸 이 땅이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롭게 보존되어 있어 감격스럽다”는 그의 말에는 참전의 기억을 넘어, 세대를 잇는 존경과 감사가 배어 있었다.
철원군 관계자는 “참전용사 후손의 방문은 DMZ가 비극의 현장에서 평화와 화합의 상징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뜻깊은 사례”라며 “앞으로도 해외 참전용사와 가족들이 한국전의 의미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벨기에가 6.25 전쟁에 3,498명의 지원병을 파병해 임진강전투와 학당리, 잣골지구전투 등에 참전하고 106명이 전사한 사실은, 철원의 땅이 국제적 연대와 희생 위에 서 있음을 다시 일깨운다.
이번 방문은 그 기억을 오늘의 평화로 잇는 조용하지만 깊은 다리였다.











